이중위가 인도된 곳은 전에 미군주둔지였던 듯한 기지 한 구석의 콘센트 막사였다. 서른 안팎의 대위 하나가 이중위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간 날카로와 보이는 얼굴이었다.재산정도를 물어봐도 좋겠습니까? 동산과 부동산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그녀가 술기운이 완연한 목소리로 으르렁댔다. 쭈그리고 앉은 그 앞에 하늘을 뒤로 하고 서 있는 그녀의 장대한 모습은 어둠속에서도 우뚝한 산악 같았다. 그는 정말로 덜컥 겁이 났다. 그녀가 그를 이곳까지 끌고온 것도 노동이라면 노동, 그 대가를 주지 못해 호젓한 그 계곡에서 그녀와 싸움이라도 붙는다면 그는 어김없이 죽고 살아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황급히 주머니를 털어 달랑 남은 천원짜리를 꺼내들고 사정했다.글씨는 두고 가거라.다행히 소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갑작스런 소동을 통해 막연하게나마 깨철이의 존재가 마을 사람들에게 묵인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모두가 모두에게 혈연이나 인척이라는 것은 동시에 모두가 모두의 감시자, 특히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감시자란 뜻도 되었다. 깨철이의 존재는 거기서 오는 그 마을의 폐쇄성 중에서 특히 성적인 것과 어떤 연관을 가졌음에 틀림 없었“알았네 가보게.”“화천아재, 진정하소. 이 빙신이 무슨 짓을 하겠능교?”“어찌됐건.우리는 죄를 짓고 여길 왔으니까 꿇어 앉아.”네가 이걸 백 번을 쓰면 본은 될 것이고, 천 번을 쓰면 잘 쓴다 소리를 들을 것이며, 만 번을 쓰면 명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왜 그랬어, 강병장”“시끄러워. 이 건방진 들. 사병이면 사병답게 처신해 기왕 사병으로 와놓고 굳이 사병대접을 받지 않으려 드는 것은 꼴불견이야. 그리고”기념관이라고죽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가슴 속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쓸쓸함이 일었다. 내가 말한들 자네들이 이해해 주겠는가.아시는 대로 전화주셔야 해요.“네가 너희 천황의 적자라면 나도 우리 왕토의 신민이다. 가서 목인에게 전하라. 남의 땅을 병탄했더라고 그 사직마저 욕되게 하는법은 아니라고.”“쓸모없는 관념의 병이죠. 이학년
그와 같은 사람들의 단언 속에 차츰 내 혼란은 진정되어 갔다. 그녀를 원하는 것은 죄악도 불가능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그녀와의 예사 아닌 인연이야말로 남자의 일생에 세 번은 오게 마련이라는 그 “때” 중의 하나라고 믿게까지 되었다. 그리하여 그 근거없는 믿음 속에 나는 그것을 온전히 내것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짜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김광하씨는 한동안 쿡쿡거리며 웃더니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갑작스런 긴급 임무의 하달로 그들의 그런 술자리는 깨지고 말았다. 끝내 밀리게 된 392연대가 적의 진격속도를 줄여줄 지원 포격을 요청해 왔던 것이다.“그래도, 검사는.”“시작은 해뜨는 집부터 되겠소. 왜 거 몇년 전에 유행하던 양곡 말이오. 그 가사 중에 내 아버지는 도박사, 그리고 내 어머니는 재봉사란 귀절이 있죠? 바로 나의 노래요.“잔말 말고 가서 차나 불러오너라.”“뒷산 야전선을 좀 써야겠는데요.”그러다가 어느 정도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지고 마음도 여유를 갖게 되자 나는 차츰 주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깨철이었다.“문 좀 열어 줄래?”이문열“저희들도 그게 어딘지 모릅니다. 과장님도 안들은 걸로 하시죠. 사실은 얘기 안하려고 했는데”“내가 지금껏 해온 일을 기껏 나를 받아주지 않은 법에 대한 비열한 복수였소. 그러나 이미 저런 사람들이 해오고 있다면 나는 흥미가 없고. 나는 깨끗한 원한과 저런 사람들의 탐욕이 혼동되는 것은 진정 피하고 싶소.”이윽고 몸을 일으킨 연인이 돌담 밖을 내다보며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연다. 발치의 화산에는 검은 연기만 솟고, 에머랄드의 하늘도 사라져버린 뒤다. 사내는 나무토막처럼 쓰러져 대답이 없다. 영인은 그런 사내를 버려 두고 돌담 곁의 수채로 간다. 여인이 정성들여 구석구석 엉겨붙은 사내의 땀과 정액을 씻어내는 동안 그녀를 덮고 있던 분홍의 열기는 피부밑으로 가는 핏줄이 되어 스며들고, 마침내는 가는 그 핏줄마저 흔적 없이 사라진다.그렇다면 할 수 없지만요, 하는 조건문을 한숨으로 대신한